+1

출생 후 바로 다음 날 퇴원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토요일인데다가 나의 난산을 동감이라도 하듯,
월요일에 퇴원을 하는 것으로 하고 일요일에도 편하게 있게 되었다.
시부모님이 오시고 아빠 어머님 정소윤이
그리고 혜영이 성원이 성원이어머님께서 방문해주셨다.
호진이는 낳은날 저녁에 발빠르게 왔다 갔다. ㅎㅎ 역시.

나의 컨디션은 역시나 좋았다.
밑은 계속 묵직하고,
잠은 계속 밀려오고,
안나푸르나는 밤에 울고,
그리고 난 계속 좋았다.

그런데,
안나푸르나의 호흡수가 빠르다고 한다.
신생가 호흡수의 2배정도로 빠르다고.
양수가 터진지 60시간
태어났을 때의 염증수치 등등
난산으로 인한 증상인 듯하다.
그런데 다른 증상이 함께 오는 것이아니라 딱 호흡만 빠르다.
조산사가 수시로 와서 호흡수를 체크하고 간다.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다른 곳에 이상이 없어서 다들 좀 괜찮아지겠지, 라면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모유는 역시 돌지 않아 그냥 빨리고, 그리고 핑거수유로 보충에 들어간다.
배고픈지 엄청 잘먹는다. 다행이다.
그렇게 일요일이 저문다.

2013.08.03 welcome- Annapurna-

41+3
머리는 이미 보이고 있는 상황
끝날 것만 같은 진통이였는지
왔다 갔다 하시는 조산사님들 마다 몇시간 이면 보겠네-
또 몇시간이면 보겠-
그러다
몇시간후에 보자-
로 계속 말이 바뀌어 간다.

그렇게
새벽
아침
점심
으로 넘어간다.
다들 신기해한다.
나도 신기하다.

어두운 불빛아래 정신이 몽롱해져간다고 해야하나
몸은 뜨거워지고
호흡은 흐트러지고
나의 밑은 탈장할 것처럼 매우 무섭고
모든 상황이 매우 애매한 상황이였으나
모두들 무뎌져서 그런가?
아무것도 아닌 듯하다.
나도 그렇고.
그럴때 정원장님이.
나 암도 고친사람이야.
그러니까 다 고칠 수 있다는 거야.
이거 좀 부었다고 걱정하지마. 내가 다 후쳐치해줄께. 편하게 해.
라는 말을 했다.
속으로 난 응 알았어! 그럼 나 몰라 그냥 힘준다-

처음보는 조산사.좀 와일드하다.
안나푸르나의 뜻에 대해서 이야기도 나눈다. 적당히
출산 의자를 권유한다.
회음부 부위가 전체적으로 많이 부어있어서
둘라 선생님은 누워서 나을 수있는 자세를 권유해보았지만
여기도 조산사님의 권유에 토를 달수는 없는 듯하다.
뾰루퉁해진 듯했지만, 패스.

아래에 거울을 대고
얼마만큼 아이가 보이는 지 볼수 있다.
안나푸르나의 머리와 이마 부분이 보이는 듯했다.
보통 산모들은 이거 보면서 힘이 불끈불끈 솟는다고 했는데,
난 이미 힘은 불끈불끈 솟아있어서 그것보다
어느 순간 푸르나 힘들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진통이 올때마다 세건 안세건 그냥 힘을 주었다.

후기들을 보면 마지막에 정원장님이 나타나 하하하의 호흡을 외치면 끝난다라는 글을 쓴걸 봤다.
그런데 난 정원장님이 와도 그렇게 아가가 빨리 나오나?
들어오실때까지도 그런 생각뿐이였다.
그런거 신경쓸때가 아니란 말씀.

와일드한 조산사가 2시경에 이야기 했다.
3시에 낳자!
나올 듯 말 듯-
3시되기 몇십분 전
힘을 주는 나에게 최고야-! 라고 말하는 순간을 몇 번 넘기고
거의 마지막이라고 생각되는 5분전에 정원장님께 205호로 와주세요 라는 전화를 넣었다.
그러고나서 바로 정원장님이 들어오셨다.
몇번의 힘주기를 했지만 패스-
그 와중에서도 왜 안나푸르나인지 정원장님이랑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자- 마지막 진통
정원장님이 하하하 를 외친다.
하!하!하!
부르륵
pm 3:1
안나푸르나가 나왔다.
정말 3시에 나왔다.
원장님과 윤호오빠가 받았다.
난 눕혀졌고,
미끄덩한 안나푸르나가 내 배위에 옮겨져 울기 시작한다.
미끌거리면서 따듯하다.
주변은 후쳐치로 정신이 없다.
보통 아이가 가슴을 찾아 빤다고 되어있는데
안나푸르나 내 배를 산삶아 타고 올라와 고개가 어깨쪽으로 자꾸 향한다.
다른 분이 가슴쪽으로 내려주신다. ㅎㅎ
태반이 나오고
탯줄은 아직 박동수가 있다.
그걸 손가락으로 느끼게 해준다.
태맥이 멈춰서 윤호오빠가 자른다.
미대생 답게 정갈하게 자를 것이라 예상했지만 조금 어려웠다 보다. ㅎㅎ
그렇게 우리는 만났다.

눈물이 찔끔났다.
뱃속에서 너무 고생했을 것 같다라는 생각뿐이였다.
머리가 크고 어쩌고 했었는데
낳고 나서 보니까 그냥 작게만 느껴진다.
근데 아이 나오고 나서 굉장히 멍했던 것 같다.
정말 멍해 있었다.
윤호오빠와 안나푸르나는 본딩을 하고 있다.
윤호오빠도 멍한 것 같은데. ㅎ

6시쯤되니 저녁밥과 함께 정신이 차려진다.
둘라선생님도 가시고,
주변은 말끔히 정리가 되었다.
그렇게 3이 있게되었다.

41+0,1,2

41일주가 되는 새벽이다.
친구가 말했던
이러다 죽겠다 싶을때 의 기분은 잘 모르겠었지만,
이쯤이면 가도 될 것같았다.
집정리를 시작했지만(진통하면서 매일을 정리했건만) 손에 잡히지 않는다.
대충 눈에 보이는 대로 정리를 하지만,
배를 움켜쥐고 있는 어정쩡한 자세로 이쪽저쪽을 옮겨다니는 정도.
회사에 가지 않고 하루 종일 함께 있어줬던 걸 알면서
마침 마무리 일을 해야하는 윤호오빠에게 빨리 좀 끝내보라고 아직이냐고 짜증을 부린다.
진통의 강도가 세다.
바로 낳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병원에 가는게 마음이 편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
나 정말 힘들어
라는 말에 출발한다.

출산리허설에 보았던 조산사님이
‘너구나 엄살쟁이’ 라는 표정으로 날 맞이하는 것 같았다.
검사결과.
아직 멀었다. 이러면 내진도 안한다.
그렇지만 밤이 늦었으니 5층에서 묶고 아침에 돌아가란다.
패닉상태에 빠져든다.
하지만 윤호오빠는 내가 집으로 가면 힘들어 할 것을 아니까 위에서 묶자고 한다.
나름 시원한 공간에서 잠을 청해본다.
윤호오빠는 옆에서 계속 컴퓨터를 하고 있다.
진통의 파도를 몇번을 넘기면서 잠이 들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퍽-하면서 액체가 흐르는 느낌이다.
눈이 번쩍 뜨이면서 하혈이야?? 라고 물었다.
윤호오빠는 양수인 것 같다고 하면서 핫라인으로 다시 전화를 건다.
양수가 터졌다. 12시간마다 항상제를 맞아야함으로
(다음날 아침 집으로 쫒겨날 판이였는데) 바로 입원조치가 이루워진다.
입원실이 꽉차 외래쪽에 있는 방으로 배정을 받았다.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밖은 외래오는 사람들(내가 그간 받았던 코스)이 있어 신경쓰였다.
무언가 몰래 숨어 있는 사람처럼 조용조용 조심조심.
출산센터에 방이 나오면 바꿔달라는 최윤호님의 당당함 ㅎㅎ 이 고마웠다.
방이 하나 나와 그방으로 옮긴다.
역시 출산센터가 그리고 방이 더 쾌적하다.

205호.
8월1일 병원에 갔데! 진통중이래!
여기서부터 기나긴 진진통과의 시간이 시작된다.
진통의 파도는 계속 넘긴다.
근데 그냥 넘기기만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들 반응을 지켜볼 뿐이다.
나도 모르겠고 윤호오빠도 모르겠는 눈치다.

8월2일 진통중이래! 머리가 보인데!
계속이다.
촉진제의 이야기가 살짝 나왔다.
윤호오빠는 반대의 의사다.
난 아직도 뭐가 맞는건지 잘 모르겠다.
단, 촉진제를 맞으면 지금 감당해내는 것에 몇배가 되는 진통으로 모든게 흔들릴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뿐이였다.
근데 무언가 필요하긴 했다.
출산동반자 둘라.
둘라를 부를까 했다.
역시나 윤호오빤는 반대였다.
둘이서 해보고 싶은 생각이다.
그런데 난 이게 맞는건지 그냥 이렇게 계속되는 태동 진통 검사와 항상제를 맞으면서 진통을 보내기만 하면 아기가 나오는건지
점점 확신이 서지 않았다.
유한 얼굴의 조산사. 지금 생각해보면 그 분도 그날의 팀장인 듯했다. 옷 색상이 녹색이였으니까.
그분이 둘라를 권했고, 난 윤호오빠가 답하기 전에 “네 그래야겠어요. 신청해주세요.”라고 빨리 말했다.
약간 까랑까랑한 목소리의 둘라 최덕임 선생님이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때부터 나의 호흡부터 진통을 대하는 자세를 스텝바이스텝으로 고쳐주시고 지도해주시기 시작했다.
윤호오빠는 그때부터 잠을 자게 했다. 애기 나오면 가장 못 잘 사람이다.
진통의 강도는 점점 새지고
나의 아래 부분은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간 잘못된 호흡들이였던 걸까?
둘라선생님이 오시고 나서 부터는 더디지만 무언가 잡혀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편했다.
둘라 선생님이 자리를 비운 사이
반대했던 윤호오빠 “둘라선생님 하길 잘한 것 같아~^^”
속으로 ‘거봐 이인간아 내가 뭐라그랬어!’의 생각이 들줄 알았는데
100% 공감하며 “그지 나도 너무 좋아” 하며 좋아했다.
이러는 과정에 나는 계속
10cm 다 열리고 머리가 보이는 상황에서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안나푸르나와 계속 함께하고 있다.

40+6

이 되는 밤.
출산센터에서 태동검사 와 내진 1-2cm 열림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일해야하는 윤호오빠의 피곤한 눈을 보면서 너무 미안했다.
내 자신에게서도 너무 실망스럽다.
집에와서 진통은 계속된다.
가끔 다가올 진통이 무서워지기도 하고
아이가 커서 인지
정면으로는 아예 눕지도 못하고 옆으로 누었을때 한쪽으로 쏠리는 기분은 너무 버거워 그냥 앉아있다
꾸벅꾸벅 졸다가 진통을 넘기고 또 넘기고.
그리고 아침을 맞이하고 진통이 좀 줄어들었을 오후에 낮잠을 잔다.
새벽. 심했던 진통은
낮이 되면 그져 잠잠하다.
그리고 밤이 된다.
그리고 또 진통을 겪는다.

내가 자연출산을 너무 쉽게 본걸까.
나의 체력을 믿고 준비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그럼 준비라는 건 무엇이였을까.

운동? 호흡?
마음속도 복잡해져간다.

40+4

예정일하고 4일이 지났다.
친구의 월급날
친구의 생일
등 하루하루가 지날때마다 주변친구들은
어떤 의미를 두어가며 함께 디데이를 바라보고 있다.
어제새벽부터 진통이 시작되었으나
야속하게도 출산센터로 갈 수 있는 5분간격은 오지않았고,
왔다고 해도 굉장히 일시적이였다.
이런-
진통의 강도는 세져서
한 번 진하게 진통이 올때는 발이 꼬이고
귀속부터 열이 나기시작한다.
그렇게 거진 아침 8시정도까지 겪고 나면, 진통은 다시 잠잠 모드.
10분의 간격으로 1분의 진통을 넘기기위해 밤부터 달려왔것만 -.-+
허무하다.

푸르나야 아직 나올 맘이 없는고니,
널 다그치는 건 아니지만,
곧 나올꺼란 생각에 음식도 가려먹지 않고 그래서 그런지
마지막으로 검사했을 때보다 커졌을까봐
그게 사실 조금 걱정이야.

8월1일 오전에 병원 예약이 되어있다.
이날까지는 생각도 안해봤는데.
7월31일 수요일
7월의 마지막 날을 멋지게 탄생하는 것도 괜찮겠다.
어찌되었건,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기를-

만삭사진

나중에 푸르나가 나와서 세상에 나오기 전에 남긴 사진이 이것 뿐이냐고 하면
할말은 없지만,
분명 이런 엄마와 아빠의 성향을 이해해 줄 것이라 믿어.
이미 상술에 틀어진 기분에
누군가가 많이 입고도 세탁하지 않았을 검정 원피스에
큐빅박힌 어정쩡한 굽을 신고 찍은 사진은 받고 싶지 않았거든.
(이날 윤호오빠는 내 기분을 달래기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돌아가던 중 눈에 띄는 간판 ‘이삭토스트’ 차세우고 달려가서 사온 이삭토스트 오메 달달한 것!)

수유티들을 친구에게 받았지만
수유티라고 정해져있지 않은 옷 중에서 하나정도 갖고 싶었던 터.
유니클로에서 만원짜리 원피스 특템
입어보지도 않고 바로 사가지고 왔는데
어머나 배 때문에 길이가 엄청 짧아졌다.
윤호오빠 핸드폰으로 우리끼리 만삭사진이라며 찍고서는
푸르나 낳고 살빼서 꼭 입고 다닐꺼라는 다짐과 함께
늘어날까봐 모셔두고 있다.
아- 늘씬한 멋진 엄마가 되고 싶다. 아—–

IMG_3540-

2013.7.23.화요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
예쁜 눈을 가진 나의 윤호오빠
아직도 입에 붙지 않는 신랑 남편이라는 말을 조금 더 자연스럽게 써보고 싶다.
우리 신랑 남편 ㅎㅎ
나의 말이라면 다 들어주고
무언가를 만들고 알아보고 하는 건 신기하리만큼 너무 잘한다.
아기 체온계 산 것도 신나하면서 방 이곳저곳도 재보고.
여튼 뭐든 사면 잘 활용해서 뿌듯하다.
잘 까먹는게 흠?이지만, 그래서 둘의 약속을 잊었거나 할때
괜히 더 삐진척 하면서 퉁퉁거리면
그것 때문에 진땀 빼는 모습을 볼때면 귀엽다. ㅎㅎ
함께 살면서 윤호오빠가 보여주는 모습은 대체로 내눈에 귀여워 보인다.
다들 아직까지 신혼이라 그렇다고 한다.
그런가보다.

어느 덧 예정일을 2일 남겨두고 있다.
결혼을 하고 바로 아이가 생겼다.
누군가는 아이를 가질 때는 최소 몇주 전부터 금주에 블라블라~ 라고 하지만
난, 아이가 생긴다는 것은 그야말로 축복이고 감사해야하는 것이라고 느낀다.
그런 마음으로 아이의 계획은 세운 것도 안세운 것도 아닌 자연스럽게 갖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순탄하게도 뱃속에서 아이가 커갔고
거의 막달에 심장이 크다는 소견과 함께 잠시 가슴을 쓰러내렸지만,
이상없다라는 진단을 받고서야
아기를 낳는 건 앞으로도 모를 일이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또 한번의 감사를 느꼈다.
주변에 좋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푸르나의 홈웨어를 기본으로
나의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음식공세를 받았다.
내겐 친정엄마의 역활을 해주는 친구들이 있어 이것또한 감사.
꼭 물질적인 것만이 다가 아니다. 말한마디 조그마한 관심 모두.
(갑자기 드는 생각. 이렇게 감사함으로 푸르나를 맞이하니 아기 이름을 감사로 지어야 하나,, 최감사. 최땡큐, 최땡스 미안.)
이러면서
먼저 난 친구들에게 존경심가 진정으로 미안한 마음이 든다.
도움은 못될 지언정 관심과 응원을 많이 할 걸.
매일 배만 부르는 것 같고, 또 남아인지 여아인지. 하다못해 아기 이름들도 잘 못외웠던 나 인데.
지금은
앞으로 아가를 낳을 친구들에게 잘하고, 지금 친구 베이비들의 이름은 다 외우고 챙겨줘야지.생각한다.
단! 개월 수 . 이건 아직 힘들어 -.-;;

과대망상증과 약간의 불안감으로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
마음속으로는 조바심이 자리잡고 있지만,
아기를 믿는다.
이렇게 내 뱃속에서 무난히 잘 자라와 준 나의 안나푸르나.
다른 엄마들처럼
태담을 많이 하는 엄마는 아니지만,
고스란히 나의 고마움을 느껴줄 것이라 믿는다.

집에서 진통 잘 참고
병원에 가서 한 4시간 진통하고 무사히 순산하고
초유도 먹이고 황달없이 꿀떡꿀떡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나와 안나푸르나의 호흡이 잘 맞길.
(요즘은 아가 안고 다니는 친구들이나 지나가는 사람이나 다 대단해 보인다는 *0*)

사실 아이를 키우는데
자연출산을 하는 엄마들의 공통적인 부분이
태어나서 맞는 예방접종 주사들, 공동 육아 등등의 길이다.
난 이런 곳에 확고한 신념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연출산도 그렇고 아이의 육아도 그렇고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룰에 아이를 맞추고 싶지 않을 뿐이다.
푸르나가 나오고 싶을 때, 그리고 나올때 함께 도움을 주는 사이
남의 눈이 아닌 나와 교감을 하면서 스스로의 경험을 지지하면서 규율을 지킬 줄 아는 아이가 자라서
본인이 하고 싶어하는 일에 뚜렷한 그러면서 그 목표을 향해 열심히 그리고 꽤나 잘 해나가는 그런 푸르나 였으면 좋겠다.
너무 멀리 갔나? ㅎ
그럼 일단-
식당에서 뛰지 않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일단 여기까지!

궁금하다 앞으로의 날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