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4.21.목요일

결국 육아란 버티는 것이다.
육아에 대한 수많은 조언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시간을 버텨 내는 것이다.
부모도 한계가 있다. 그 한계 속에서 최대한 인간적으로 어른스럽게 아이를 대하는 것이다.
때로는 제지하고 때로는 사랑을 주며 그 시간을 살아 내는 것이다.
힘든 육아의 시기, 그 시기는 괴롭지만 가장 화려한 시간이다.
매 순간 살아 있음을 느끼는 날것의 시간이다.
이 시간은 지나갈 것이다.
그러면 더는 괴롭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삶의 그림은 희미해지고 즐거움도 줄어들지 모른다.
이미 쑥 자라 버린 아이는 말썽은 더 이상 부리지 않겠지만 내 품의 아이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귀여운 ‘내 강아지’는 더이상 없다.
인생에서 좋은 것은 왜 같이 오지 않을까?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견뎌야 할 삶의 아이러니다.

부모의 불안이 아이의 불안이 된다.
불안한 부모는 아이를 존중할 여유가 없다.
불안하면 불안할수록 걱정이 늘어나고, 그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러다 보면 속이 다 타들어가 재만 남고 정신없이 닥치는 대로 불같은 화를 낸다.
불안한 감정을 표현할 줄 몰라 화를 내기도 하고, 상대편 배우자가 그 불안을 해결해주지 않은 것에 또 화를 낸다.
서로의 불안이 부딪힌 상태에서 늘 화가 난 상태로 살기도 한다.
그런데 그 대상이 주로 내 아이가 된다.
부모에게 아이는 종종 화를 내도 편한 사람이 된다.
많은 부모가 불안하면 아이한테 화를 낸다.
자신의 불안의 원인이 아이가 아님에도 부모는 내 아이에게 화를 낸다.
아이에게 화를 내는 부모의 속마음은 세력으로 따지자면 가장 약한 존재라 만만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이는 내가 없으면 못살기 때문에 내가 화를 내도 금당 용서할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모의 예상대로 아이는 부모가 악다구니를 쓰듯 소리치고 패대기를 쳐도 “엄마”를 부르며 다시 달려온다.
그 고마움을 모르는 부모가 너무나 많다.
아이가 스스로에게는 무섭고 공포스럽고 혼란스러웠던 순간을 너무 쉽게 용서해주었다는 것을 모른다.
아이의 마음속에 상처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오히려 금방 용서해주니까 아이를 쉬운 존재로 생각한다.
부모는 자기 마음에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간직되어 있기 때문에 아이가 언제나 자신의 마을을 오해하지 않을 거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아이앞에서 쉽게 화를 낸다.
문제는 아이가 사춘기 때 발생한다.
아이 마음속 상처가 커질 대로 커지면 아이는 더 이상 부모를 용서하지 않는다.
힘의 균형이 비슷할 때는 상대에게 화가 나면 맞서 싸우거나 안 보면 된다.
그런데 자식은 부모와 힘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
아이는 마음속으로 화가 나도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고, 돌아서서 헤어질 수도 없다.
그래서 ‘부모의 화’는 아이에게 와 ‘아이의 분노’가 된다.
부모의 화보다 더 큰 화가 쌓이는 것이다.
아이의 마음은 존중 받아야 한다. 특히 부모에게는 반드시 존중받아야 한다.

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 – 서천석 중


지금처럼 마음이 어수선할 때 발등에 불떨어진 것처럼 부랴부랴
나의 마음을 안정시켜주고 찔려 아프지만 객관적으로, 공감대로 이야기 해 줄 책을 찾곤 한다.
이럴때 이기적인 마음으로 내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줄 수있는 사람을 찾고 싶지만
나 역시 그럴 마음이 못되는데 누가 들어주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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